서민우 개인전 《구획들》 전시 비평_구획들: 견고한 가벽을 재건하기

2023. 11. 15. 06:28Writing


작가 | 서민우
기획 | 윤태균
서문 | 윤태균
비평 | 나원영, 서예원, 전대한
그래픽 디자인 | 박파노.파노
공간 디자인 | 조승호
설치 | 서민우, 윤태균, 장영민, 정명우, 조승호, 황웅태
촬영 | 스튜디오 아뉴스
마스터링 | 김수민
프로젝트 매니저 | 강다영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민우는 구획을 통해 소리에 각자의 공간-영토를 만들어 주고, 영토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변형된 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구획을 구성하는 재료인 나무, 철, 돌은 소리를 정형화된 공간 내에 붙잡음과 동시에 바깥으로 새는 소리를 고유한 물성으로 변환시켜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흘려보낸다. … 물론 전시 공간 옆 드라이아이스 공장의 작업 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서문 발췌

 

사진 : 서민우

 

 

구획들: 견고한 가벽을 재건하기

글. 서예원

 

 

서민우는 지난 개인전 《EarTrain Reverse》(2021)에서 지리적 위상을 조절하거나 물성 변주를 통한 청각적 경험을 배치하여 가상적 공간감을 제공하는 작업을 한 바 있다. 이때 특정 음역대를 부각하기 위해 조각적 공간을 구성하는 ‘소리-조각’을 설치했는데, 이는 소리를 다양한 환경에 놓음으로써 청취하는 관람객이 특정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2022년 블랙박스에서 공연된 쇼케이스 ‹earcabinet›는 완벽한 공간으로서 소리를 제공하는 경험이 아닌 소리가 분절되도록 공간을 설계하여 소리의 의도적인 손실을 유발하고, 동시에 소리에 대한 환영을 소거하는 퍼포먼스였다. 이처럼 작가는 소리 매체가 지닌 무수한 음역대를 공간-조형적으로 빚어내어 질감을 형성하는 청각적 반응과 수행성을 실험했다.

   

Hall1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그가 공간과 건축적 실험에 주력하려 공간을 선택하는 단계부터 신중했음을 직감할 것이다.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서야 전시 공간임을 유추할 수 없고 산업 공장들과 나란히 자리하는 Hall1은 드라이아이스 공장과 물류 창고 사이, 사무형 대형 오피스텔 주차장 입구와 마주하고 있다. Hall1은 들어가기 전 입구부터 주변 공장의 잡음을 들을 수 있으며, 과거 소창고로 사용하던 건축물을 개조하였기 때문에 지난 공간의 흔적들을 건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자재들을 내외부로 바로 조달할 수 있도록 양 너비가 큰 입구, 높은 층고와 넓은 홀, 작은 직사각형 꼴의 2층 공간, 오래된 회색 시멘트 벽돌, 슬레이트 지붕, 지붕을 받치는 녹슨 대들보 등은 Hall1을 상징적으로 구조한다. 

 

이와 같은 공간에 대한 구조와 풍경, 시각적 스케일과 시간의 레이어는 《구획들》에서 선보이는 10개의 작업에 각각 관계한다. 동선 순으로 입구에서 가장 먼저 ‹Hall Ambience›, ‹구획1: Blurry Walk›, ‹구획2: Blurry Walk›을 확인할 수 있다. ‹Hall Ambience›는 제목 그대로 Hall1의 공간음을 수집하여 재생한 사운드로, 기존 홀 가벽에 설치했다. 이것은 진동판 없이 출력되는 진동스피커로 가벽 전체가 흔들리면서 재생되는 원리이다. 반면 바로 옆에 위치하여 일반스피커를 통해 공간음이 재생되는 ‹구획1: Blurry Walk›, ‹구획2: Blurry Walk›의 경우, 내부 울림통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가벽으로 설치했다. 가벽 ‹구획1: Blurry Walk›은 2m 40cm, 뒤에 있는 ‹구획2: Blurry Walk›은 ½ 의 규모이다. 이 두 가벽은 소리의 지지체가 되면서, 소리가 지닌 공간감을 스케일로 제시한다. 이러한 경우 관객은 소리 자체를 듣게 되는 것이 아닌, (시)지각적 환경이 제시되는 공간에 ‘지속적’인 상황으로 위치하게 된다.

 

이 구획은 과거 미술사에서 신체성과 건축적 구조를 실험1)했던 작업을 쉽게 떠오르게 하는데, 작가는 미술 매체의 활용 방식을 적극 수용한다. 합판과 패널을 이용하여 단일 가벽과 복합적인 가벽 복도를 만들고 퍼포먼스와 조각적 상황을 혼합했던 당시 작업이 능동적인 관객의 신체와 수행으로부터 오는 움직임, 스케일 감각에 주로 동원되었다면, 이 작업은 유사 환경으로 감각을 의도하지만, 그것은 기호로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1배수와 2배수 크기를 나란히 놓아 상대적인 공간 스케일을 가늠케 하고, 가벽을 통해 공간의 구획과 더불어 공간의 제한과 역동, 공간 안팎의 환경을 설계한다. 그리고 이곳 가장자리에서 나오는 미세한 발자국 소리인 ‹자국들›은 이 공간의 가장 이질적인 소리인 동시에 동세를 암시하는 구체적인 장치가 된다. 소리를 조형적 덩어리로 제안하는 청취 경험은 지난 미술의 매체사를 경유하지만 어떤 완전함을 의도적으로 비껴간다.

 

Hall1의 2층 공간으로 진입하기 전, 돌 오브제인 ‹Saw Generator›와 ‹Drill Generator›를 확인할 수 있다. 두 개의 돌에 각각 진동 스피커를 부착한 두 작업이 놓인 곳은 이전 전시2)의 흔적이 눈에 띄게 남은 계단 옆 바닥이다. 작가가 소리 수집을 위해 공간에 머물렀을 당시 준비 중이었던 이전 전시에서는, 2층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바로 보이는 바닥이 기하학적인 삼각형 모양으로 뚫려 그 안의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됐었다. 《구획들》에서는 노출 콘크리트가 메꿔진 자리에 삼각형 자국이 남겨져 Hall1의 공간성을 담았던 과거의 전시 맥락이 지표로서 드러난다. ‹Saw Generator›은 공사가 한창이었던 과거 전시준비 현장에서의 쏘우톱의 소리를 수집하여 돌에 부착한 형태로, 진동을 가진 소리는 돌과 부딪히면서 특정한 파동을 지니게 된다. 1분 30초 정도의 날카로운 쏘우톱 소리가 두 번 반복되는 이 트랙은 과거의 전시가 ‘공사’라는 ‘사건’과 관계하며, 이러한 ‘사건’은 공간에 서사를 부여한다. 반면, 5~6초 간격으로 1분 동안 반복되는 ‹Drill Generator›는 과거 현장에서 돌과 소리를 수집했다는 점과 기본 소리음에 마찰을 주어 파동에 변주를 주었다는 점에서 전자와 동일하다. 하지만 공간의 땅을 실제로 판다는 점에서, 즉 실제 ‘물성’에 관여하고 ‘깊이’의 감각을 통해 드러나는 질감의 속성에서 차이를 지닌다.

 

계단 맞은편에 위치한 ‹Crowbar Generator›도 마찬가지로 과거 수집한 쇠지렛대의 소리를 돌에 부착하여 질감을 드러낸 작업이다. ‘빠루’라고 통용되는 이 기구는 끝이 구부러져 있어 단단한 것을 빼내거나 긁어내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목공을 해체할 때 쓰인다. 유격 사이로 보이는 돌들, 오랫동안 한 부분의 돌을 파내다가 어느 순간에 툭 걸러지는 소리를 가진 ‹Crowbar Generator›는 몸을 이용하여 행위하는 과정, 몸의 움직임과 간격, 시차를 드러낸다. 이는 앞선 두 개의 돌 오브제와 제작 형식은 동일하지만, 설치 조건에서 그와는 다른 흥미로운 방식을 가진다. 이 작업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좌측에 놓인 차음재 작업 ‹Cover by Walk›을 지나야 한다. 1m의 계란판 차음재 6개를 이어 붙인 긴 방음판은 사선으로 세워져 나무 골조로 지탱된다. 사선 구조로 긴 복도를 형성하는 ‹Cover by Walk›를 걸어가다 보면 공간의 소리가 모이는 경험을 하게 되고, 방음재로 구획된 공간에는 옆에 있는 다른 작업의 소리가 서서히 흡착된다. 각각이 진동하는 소리가 모이는 이곳에서 관객은 유일하게 손실된 소리를 감각하고, 사선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통해 소리의 횡단을 경험한다. ‹Crowbar Generator›과 ‹Cover by Walk›의 레이어는 상응하면서 존재감을 가진다. 

 

2층에 올라간 직후 눈 높이의 벽에 설치된 ‹Distortion Floor›은 진동 스피커를 연결한 알루미늄 사각 판이다. 2층 공간의 넓이와 동일한 비율인 알루미늄판은 전시가 흐름에 따라 소리 진동에 영향을 받게 되고, 서서히 휘어진다. 물질의 가변적 속성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업은 재료가 되는 물질 또한 변형시키면서 시간에 따라 서로를 왜곡시키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스피커에서는 걸을 때 몸이 움직이면서 마찰하는 소리, 살이 부딪치는 소리로 걷기의 과정이나 움직임으로부터 마찰하는 물성을 들려준다. 한편,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이용하여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다. 1층과 2층을 구획하는 공간 사이에는 계단이 위치하고, 벽과 천장 지면 경계에는 알루미늄 사각판이 자리한다. 다리는 지상과의 관계를 감각하게 하는 신체의 일부이다. 그리고 지면을 감각하는 것은 신체의 운동성으로부터 가능하다. 작가는 걷는 행위에서 빚어지는 마찰음을 통해 동세를 암시하지만, 이러한 단초가 단순히 움직임을 드러내고 신체적 수행을 제안한다는 감상에 그친다면 얄팍한 추론에 불과하다. 지상, 지면에 관한 인지는 실제로 견고하지만, 이 구획은 지면에 대한 기호만을 여전히 내세운다. 고정된 공간의 경험, 지면의 전환, 방향 감각, 오늘날의 공간 감각을 사고하면서 어떻게 공간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작업 ‹Hall Moment›의 소리가 2층 지면 위에서 파악할 수 있지만, 1-2층 경계의 아래에서 듣는 것이 더 적절한 위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경계의 반대에서 감상을 요하는 ‹Hall Moment›는 처음 입구에서 마주한 ‹Hall Ambience›와 연동한다. 공간 내부음이었던 ‹Hall Ambience›와는 반대로 이 작품은 옆 드라이아이스 공장에서 나는 소음,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 소리, 풀숲 소리 등 외부의 소리로 구성된다. 특정 순간 발생하는 외부 사건을 소리 트랙을 만들었다. 슬레이트 지붕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외부에 존재하는 이 잡음들은 내부로 침투하여 공간 내부음과 가벽, 차음재과 알루미늄  판과 다시금 뒤섞인다.  

 

《구획들》은 말 그대로 ‘구획’의 조건으로 설계된 공간-건축적 상황들이며, 기존 소리 질감에 다시 특정 마찰이 덧대져 형성된 유사 물질들은 관람객이 조각적 기호로 바라보게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구체적인 구조를 의도하고 때로는 제한된 경험을 제공하면서 파동의 물성과 공간감을 경험한다. 미술의 관객이라면 더욱이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를 상기하고 감각하려 할 것이다. 작품에 대한 보는 이의 위치를 조절함으로써 작품의 일관성을 변형하고자 하는 시도는 과거 미술사에서 미술 작품이 지닌 절대성과 환영성에 대한 저항으로, 예를 들어 하얀 벽, 사각 프레임 액자, 저자성, 조명 등과 같은 작품과 그 대상을 둘러싸는 완전한 것들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 같은 것이었다. 이에 비롯한 일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당시 특수한 환경, 그 자체성(suchness)을 보존하기 위함이었고, 영구적이서어는 안되는 순간의 유일함은 1960년대 생산 산업과 소비를 가속화하는 전략인 ‘예정된 폐기3)’를 연출하는 당대성과 깊이 연관된다. 또한 장소로서 미술(Site-Specific Art)도 마찬가지로 오랜 화이트큐브의 관행을 깨뜨리며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차원과 미술 사이를 조우했다.

 

여전히 오늘을 표상하는 산업 재료 날 것에 대한 기호와 ‘경계적인 장소4)’, ‘소리로서의(어쩌면 물질로서) 현전’을 보여주는 《구획들》은 확고한 단언에 붙으려 하지 않고 ‘폐기될/사라질’ 것으로 향하기를 스스로 위치하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고정된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거나 혹은 붙거나, 범주에서 구획되는 것은 당시에나 가능한 시도였고 동시대에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단지 표상하고, 서울에 위치한 Hall1의 장소성과 포개어진다. 그렇지만 어떤 것에도 붙지 않을 가벼움을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말들과 이미지가 나풀거리고 횡적으로 확장만 하는 오늘날 미술의 장 안에서 다시 진지하게 고찰하고, 쌓아 올릴 자국들을 만들어 본다. 

 

예술, 소리, 사운드 아트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다.5) 그리고 ‘소리’는 명백히 파동으로 존재하는 매체이다. 이 때문에 사운드 아트의 경우 흔히 코드를 직조하여 이미지를 가시화하는 미디어 아트의 작동법을 따랐고, 이러한 경우 대개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이미지 스케이프에 가까웠다. 하지만 《구획들》의 소리는 고착되지 않고 매질의 진동으로 부유하는 덩어리 자체, 즉 반향하는 음파가 공기 전체의 불륨을 형성하여 현현한다. 입체적인 부피감으로 진동하는 소리 물질은 조각으로 수행하고 조각적으로 둘러싸임으로써 서울의 소문자 역사를 경유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비집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구획 경계에서 자국을 남기며. 

 

 

 

각주

1)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이 1970년대에 실험했던 ‹Green Light Corridor›(1970)과 같은 설치-퍼포먼스 작업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약 30년 후 브루스 나우만은 영국 테이트모던(Tate Modern) 터번홀(Turbine Hall)에서 비언어적인 소리로 전체 공간을 채우는 ‹Raw Materials›(2005-2006) 오디오 작업을 선보인다.

2) 2023년 4월 27일부터 5월 23일까지 진행했던 김동희 작가의 《Hall2》 전시이다. 이 전시의 준비 기간에 서민우 작가는 Hall1에 종종 머무르며 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소리를 수집했다. 《Hall2》는 공간이 지닌 수많은 맥락을 유무형의 구조물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전시였다.

3) Robert Haywood, “Critique of Instrumantal Labor: Meyer Schapiro’s and Allran Kaprow’s Theory of Avant-Garde Art,” in Benjamin H.D. Buchloh and Judith Rodenbeck, Experiments in the Everyday: Allan Kaprow and robert Watt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1999

4) 《Hall2》 전시 서문 중, “처음에는 작품 제작 촬영 스튜디오의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에 전시가 가능한 환경이 입소문 나면서 전시장으로의 활용이 늘었다. (…) ‘Hall1’의 장점인 비교적 말끔해 보이는 큰 바닥과 벽을, 마치 연장된 화이트 큐브의 일종으로 대하면서 작가(혹은 작품)와 관객 사이에 기묘한 무언의 합의 같은 것들을 전제로 전시의 시간이 열렸다 닫힘을 반복했다.” 라는 내용에서 Hall1 공간이 가진 복잡한 레이어를 가늠할 수 있다. 

5) David Toop, “The art of noise,” TATE ETC, 2005, https://www.tate.org.uk/tate-etc/issue-3-spring-2005/art-noise